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 기준으로는 분명 높은 연봉인데, 월말에 통장에 남는 돈은 생각보다 적다. 환율 문제일까, 화폐 단위 차이 때문일까.
내 소비는 합리적이라는 전제에서 이유를 찾아보자. 답은 단순하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의 구조가 무겁기 때문이다.
세금
연봉 숫자만 보면 커 보이지만 실수령액은 다르다. 연방세, 주세, Social Security(6.2%), Medicare(1.45%)까지 빠지면 손에 쥐는 돈은 확 줄어든다.
실제로 따져보자. 싱글 기준 연봉 12만 달러면 연방세가 약 1만 8천~2만 달러, Social Security와 Medicare가 약 9천 달러다. 여기에 주세까지 붙는다. California 같은 고세율 주는 실효세율이 30%를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12만을 벌어도 손에 들어오는 건 8만 초중반이라는 뜻이다.
Texas, Florida, Nevada처럼 주 근로소득세가 없는 주도 있다. 하지만 그게 세금 총액이 적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주는 대신 Property Tax가 높다. 한쪽에서 아낀 돈을 다른 쪽에서 토해낸다.
보험
미국에서 보험은 선택이 아니라 고정 생활비다. 건강보험, 자동차 보험, 주택 보험이 매달 빠져나간다.
자동차 보험부터 보자. 미국 운전 경력과 크레딧이 없는 상태로 막 건너오면 보험료가 폭탄이다. 같은 차, 같은 조건이라도 신규 이민자에게는 연 3천~5천 달러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운전 가능 연령(주마다 15~16세)이 되어 보험에 추가되면 보험료가 두 배로 뛰기도 한다. 십 대 운전자 한 명 추가에 연 2천~4천 달러가 더 붙는다.
주택 보험은 주마다 천차만별이다. 우박, 허리케인, 산불에 자주 노출되는 주는 요율이 살인적이고, 아예 받아주는 보험사를 찾는 것조차 어렵다. Florida 일부 지역은 연 보험료가 1만 달러를 넘기도 한다. 돈을 더 주면 해결은 된다. 그게 문제지만.
건강보험은 길게 말하지 않겠다. 다들 안다. 회사 플랜이 있어도 가족 본인 부담이 월 수백 달러, 마켓플레이스로 가면 4인 가족 월 1,500~2,000달러는 우습게 나온다.
집
집은 모기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Property Tax, HOA, Home Insurance까지 더하면 겉보기에 비슷한 집도 실제 월 부담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40만 달러짜리 집을 7% 금리로 샀다고 하자. 원리금만 월 2,600달러 안팎이다. 여기에 Property Tax(Texas는 집값의 1.6~1.8%, 연 7천 달러 수준), HOA(월 300~500달러), 보험까지 더하면 실제 주거비는 월 4천 달러를 가뿐히 넘긴다. 높은 금리 구간에서 산 경우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타이밍과 본인 자금 현황을 다 보고 들어가야 한다. 아래글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모기지 금리는 왜 10년 국채 금리를 따라 갈까], [모기지내고 남는게 없다면, 선택3가지]
자동차
미국은 차 없이 못 사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대중교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 구성원 수만큼 차가 필요하다. 신차 평균 할부가 월 700달러를 넘긴 지 오래고, 여기에 보험, 기름값, 유지비가 따라붙는다. 차가 두 대면 그 자체로 월 2천 달러가 사라진다. 고유가 시대에는 전기차가 그저 그립다.
육아비용
Childcare는 상상 이상이다. 맞벌이가 기본인데, 영유아 데이케어는 지역에 따라 월 1,500~2,500달러다. 아이 둘이면 모기지보다 더 나간다. “둘째 낳으면 한 명이 일을 그만두는 게 차라리 이득”이라는 계산이 농담이 아닌 이유다.
이게 쌓이면 어떻게 되나
이 고정비가 계속 쌓이면 “분명 많이 버는데 늘 빠듯하다”는 느낌이 생긴다.
실제 케이스를 하나 보자. 한 클라이언트 부부는 합산 22만 달러를 벌었는데 매달 마이너스였다. 숫자를 펼쳐 보니 답은 뻔했다. 모기지 4천, 차 두 대 2천, 데이케어 3천, 보험 1천 5백. 생활비를 쓰기도 전에 고정비로만 월 1만 달러가 넘게 빠지고 있었다. 못 벌어서가 아니라 구조가 무거웠던 거다.
결국 중요한 건 현금흐름
미국에서 연봉 숫자만 보는 건 의미가 없다. 매달 실제로 얼마가 남고, 그게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미국에 오래 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버는 돈보다 안 나가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살수록 이 말이 현실로 느껴진다. 그런데 절대 쉽지 않다. 살아봐야 안다.
높은 연봉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 낮은 고정비, 관리 가능한 부채 구조가 더 중요하다. 미국은 고연봉만으로 편해지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거다. “나는 지금 얼마를 버나”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구조인가.”
지금 빠듯하다면 못 버는 게 아니라 구조가 잘못 잡힌 거다. 그리고 구조는 바꿀 수 있다.
거창하게 Cash Flow라고 부르지만, 쉽게 말해 가계부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금 당장 한 달 고정비부터 적어봐라. 숫자로 보면 분명 보인다. 다음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 왜 현금흐름이 중요할까]
